1. 주님의 이름 부르기의 정의와 중요성

주님을 부르는 것은 그의 신성한 인격의 풍성한 임재를 누리는 것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의 신성한 인격의 풍성한 임재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주님과의 접촉뿐 아니라 그분과 지속적인 접촉을 가지는 것의 대부분이 이 간단한 여는것(opening)과 부름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그분을 신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우리가 크게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새로워지고 강화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부르는 것이 기도의 한 방면이지만 부르는 것은 단지 기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예레미야 29장 12절에서 우리는 이둘의 차이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비록 기도는 들리지 않더라도, 부름은 반드시 들려야 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둘다 “부르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르다, 외치다, 큰 소리를 내다, 울부짖다, 도움을 위해 누군가를 부르다, 자극하다”입니다. 다른 말로하자면, 사람의 이름을 크게 말함으로 그를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조용히 할 지 모르나, 부르는 것은 들릴 수 있게 크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어 “qara" 는 보통 “부르다”로 번역하는데, 레위기 13:45, “문둥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는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와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다”로 또한 번역할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는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말함으로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경고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외침은 명백하게 침묵적이거나 심지어 조용해서는 않되고 오히려 강조적이고 꽤 소리가 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이름을 부르며!

이사야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그분의 대한 외침이라고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12:2-6). 이러한 일련의 구절들에서 이사야는 감사하고, 노래하고, 부르며 외치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유사한 말들과 뒤따른 것들은 4절에 언급된 부르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고 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쪽에서는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을 수 있습니까? 이 단락은 많은 방법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구원을 찬송함으로 부르짖고 그분에게 외침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12장 4절에서 감사하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한조를 이루고 6절에서 찬송하고 부르는 것이 한조를 이루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동격의 구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부르며 외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명백히 소리를 내는 것이지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 10장 9-10절에서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으신 자 가운데서 살리는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며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두 개의 현저한 결과를 산출하는 두가지 행동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은 마음의 기능으로 의에 이르고, 시인하는 것은 입의 기능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명백히 소리를 내는 것이지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